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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

2023. 9. 27
나는 낯선 사람과 쉽게 대화를 한다. 내가 먼저 말을 걸기도하고, 상대편에서 말을 걸면 편하게 떠든다.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동시에 사람을 되게 가린다. 그리고 깊이 친해지기까지 어려운 사람이다. 내 마음을 다 보여주고 마음을 다 주기까지 오랜 시간과 공이 필요하다.
재밌는건, 친화력이 좋아보이고, 아는 사람이 많고, 항상 웃고 다니는 나를 보고 이제 몇몇 인도 사람들은 조심하라고 한다. 이상한 사람도 많은데 누구한테나 그러지 말라고. 한 명은 다른 사람들한테 내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말라고도 했다. (어차피 인도 번호라 한국 돌아가면 땡인데)
이들은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걸까. 뭘 모르고 있는 걸까.
나는, 자신은 믿을만한 좋은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고 나쁠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이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 그 안의 귀한 존재는 모두가 똑같다. 모두가 아름답고, 귀하고 빛나는 사람들이다. 단, 그것을 덮고 있는 에고가 얼마나 두꺼운가에 따라 우리는 흔히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나도 언제든 내 에고에 의해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 성격, 성향도 다 에고의 한 부분이다. ‘나’가 사라지면 그곳에 남는 것은 있으나 없는무아의 존재 뿐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람을 만난다. 못 그럴 때도 있다. 나는 에고가 얇은 사람은 선호한다. 나도 에고가 얇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산다.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이런 사람이 되기도 하고, 저런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어떤 딱 한 모습이 고정되어서 영원히 ‘어떤’사람이고 그런 게 아니다. 엠비티아이 인프제라고 모든 순간 인프제인 것이 아니다. 그 다양한 성향들, E, I, S, N … 실은 이 모든 성향을 우리는 다 가지고 있다. 어떤 상황인가에 따라 특정한 부분이 드러나는 것 뿐이다.
그래서 나는 왠만하면 모든 사람을 다 좋게 본다. 좋은 사람으로 ‘보는’ 것은, 좋은 사람으로 ‘믿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믿으면, 만일 그 사람이 에고가 왕왕 드러났다 했을 때 실망하고 상처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본다면, 그 사람의 에고를 보고 아, 이런 모습도 있었구나, 두려움이 있네, 상처가 있네. 생각하고 만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누군가에게 ‘나쁜짓’을 하지 못한다. 내가 깨어 있다면, ‘나쁜’ 상황에 처하기 전에 그 사람과 거리를 둔다거나 잘라낼 수 있다. ‘나쁜’에 계속 방점을 찍는 이유는 세상에 나쁜 게 없기 때문이다. 다 내게 필요해서 온 것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의 눈과 얼굴 표정, 몸짓, 아우라를 보면 느낌이 온다. 내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뭐에 많이 덮여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사람을 많이 만나보고 경험해보다 보면 이런 경험치와 직관이 생긴다. 그래서 경험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나는 어리다. 내가 입고 있는 이 몸은 어리다. 모르는 게 많다. 그래서 더 경험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이게 현재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내 관점이다.